세상물정의 사회학

세상물정의 사회학
아이러니하게도 책 읽을 여유가 없을 때에도 한 달에 한 두 권씩은 책을 구입했었는데, 상대적으로 책 읽을 여유가 생긴 요즘에는 책을 거의 사지 않고 있다. 되돌아보면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강박(핑계에 가깝지만)을 책을 고르는 것으로 해소해왔던 셈이다. 그래서 밀린 숙제를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고 있다.

나의 불행의 근원이 모두 기구한 팔자 때문이라고 믿게 만드는 환등상의 불을 끄고 그 어둠 속에서 세속의 리얼리티와 마주칠 때 그리고 ‘콜드 팩트’를 찾아낼 때 우리는 비로소 힐링의 대상은 나의 마음이 아니라 각자가 살고 있는 사회임을 깨닫게 된다. ‘세상물정의 사회학’은 죄가 없는 개인들이 죄가 많은 사회에게 불만을 말하는 애처러운 시도이다. 모두가 리얼리티에서 눈을 돌리고 위안을 찾기 위해 위안의 노래만을 듣는 시대에 사회학자는 ‘콜드 팩트’를 혼자 부르고 있다. 그 외로운 노래가 합창이 될 때, 상처받은 사회는 비로소 자기 치유의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p.266)

이직을 하고 노르웨이에 출장 겸 여행을 갔을 때 마침 오슬로의 시장 선거 기간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던 식당 옆 거리로 각자 지지하는 정당 고유의 옷을 입고 축제를 하듯 지나가는 행렬을 보면서 우리와는 참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2주 간 그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숙한 사회가 보여주는 따뜻함과 우아함에 경외감과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 마음은 한국으로 돌아와서 ‘그럼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그 질문에는 아직도 구체적인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사회 이슈에 귀 기울이고 선거에 한표를 올바르게 행사하는 것 정도가 현재 하고 있는 소극적인 노력이다.
‘세상물정의 사회학’을 읽으면서 사회에 대한 소극적인 나의 행동이 이기주의로 변모하기 쉽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에 분노하지만 그 사회를 바꾸는 방법을 고민하기 보다, 그 안에서 보란듯이 잘 살아가는 것이 이 사회를 비웃는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합리화를 한 적이 많았던 것 같다.

국가가 개인을 보호하지 않을 때, 설상가상 보호하기는커녕 국가가 악행의 근원일 때, 국가로부터 돌아앉은 개인은 대체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 어떤 이는 국가가 개인을 돌보지 않을 때 이기주의로 후퇴한다. IMF 관리체제 이후 한국인의 상식은 적어도 그렇다. 한국인은 국가가 나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면, 오직 부만이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러한 이기적 상식은 해결책은 아니다. (p.220)

이 책은 나와 같은 소시민에게 사회 문제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한다고 선동하지는 않는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소시민 각자가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물정의 사회학
– 세속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
노명우 / 사계절출판사

[BOOK]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직장을 그만뒀단 말에 친구들은 의견이 갈렸다.

부럽다. 좋겠다.

왜 그랬어. 넌 일을 계속 해야해. 계속 일 안할거야?

너 변했어. 등등

부럽다하고 좋겠단 말엔 왠지 모를 반감으로 뭐가 좋냐며 빠직했고

일 다시 시작 안하냔 말엔 왜 난 일을 꼭 해야해? 난 좀 쉬면 안되냐며 욱했었다.

이런맘을 아는 대학 후배가 나에게 필요하다며 얘기해 준 짧은 만화.

결론은

어떤 입장이든 지금 난 행복한가에 대해 확실한 답이 있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린 행복한가…?

난 YES!!!

나는 바닥에 탐닉한다

어렸을 때 바닥만 보고 걷지 말고
앞을 보고 걸으라고 어머니께 자주 꾸중을 들었었다.
지금도 습관처럼 보도블럭 색깔에 맞춰 걸으려고 총총 걸음 걸을 때도 있다.
빨간 블럭만 밟고 가려고 다리 뻗어서 흰 블럭을 뛰어넘는 건
다들 한번쯤은 해 본 경험 아닐까? ^^
나도 나름대로 바닥에 조예가 깊다고 생각하였으나
바닥에서 미학적 사회적 의미를 찾아내는 글들을 읽으면서
이제 바닥 탐구는 그만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후후~ ^^
동경의 길바닥
정말 감동받았던 것은 동경의 보도블럭과 맨홀뚜껑이었다.
주택 살 적에 아버지를 도와서 보도블럭을 깐 적이 있는데
블럭 하나가 안 들어가는 모서리에 맞춰 블럭을 쪼개는 일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언제쯤 보도블럭 하나에도 장인정인이 느껴지는 길을 걸을 수 있을까?

눈에 띄는 랜드마크나 기념비를 지으면서 수준 높은 디자인을 성취하는 일은 의외로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어느 정도 이상의 자본이 투자되어 세워지는 건물들에는 평균 이상의 품질이 어렵지 않게 확보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일상적인 삶이 담기는 평범한 장소들의 디자인 수준을 높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좋은 디자인에 대한 가치가 밑바닥부터 공감되어야 하고, 사소한 곳에도 적지 않은 자본이 투자될 수 있을 정도의 경제 규모가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p.142)

나는 바닥에 탐닉한다
천경환 지음 | 갤리온 | 2007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bus.jpg
평소 버스 타는걸 좋아하는 나는 사실
버스기사님들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게 있었다.
괜히 혼날까봐 잽싸게 타고, 미리 벨을 누르고 문앞의 봉을 꼭 부여잡고 후다닥 내린다.
이런 나의 습관이 유럽 특히 영국에 갔을때도 어김없이 발휘되어
문이 열리기도 전에 발을 내밀어 창피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들은 2층버스임에도 정류장에서 도착하여 문이 열렸을때
비로소 2층에서 내려온다.
말그대로 문화충격이었다.
왜 우린 그게 안될까…
버스기사님들이 나빠서 일까?
‘빨리빨리’ 라는 일명 한국인의 습성 때문일까?
라고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던 나의 물음에 대한 정답이 바로…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에 있었다.
노선을 물을때 왜 버스기사님들이 그렇게 퉁명스럽게 대하는지…
쾌속질주를 하며 정거장을 지나치는지…
제때 제때 내리지 못하면 구박을 받아야 하는지…
덥고, 추운데도 버스에 냉방과 난방을 작동시키지 않는지…
솔직하고 꾸밈없는 20년 버스기사 경력의 지은이의
이야기는 새해를 여는 1월 나에게 꽤 큰 깨달음을 주었다.
반감과 긴장된 맘으로 휙~ 하고 버스를 타는 나도
내일아침엔 그들에게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건네며
탈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기를 바란다.

이를테면 일산-대곡로-수색-모래내-연세대-시청, 이렇게 써놓으면
사람들은 머리 속에 그 노선 지도가 그려진다.
그런데 동그라미 안에다 ‘이마트’, ‘연세대’ 이렇게 써놓으면 그게 어디서 어디로 가는 차인 줄 아나.
‘빨강’ 하고 둘째 자리 번호가 ‘7’이면 일산이나 원당에서 오는 차인줄 안다고?
에라이 또라이들아. 그건 시에서 니들이 관리할 때나 써 먹어라.
시민들은 자기가 가는 차 번호를 외우지 그런 걸 외울리가 없다.
게다가 같은 번호 ‘7’이라도 일산과 원당은 전혀 다른 곳이고
같은 ‘6’지역이라도 인천과 시흥은 의정부와 임진각 같은 차이다.
빨강차는 R, 파랑차는 B는 또 뭔가.
왜 빨강차는 ㅃ 파랑차는 ㅍ 라고 해놓지. 미국 물을 먹었냐 영어 첫 글자를 써 놓게.
열 받은 어떤 네티즌은 G, R, Y, B 그 영어 첫 글자를 따서
‘지, 랄, 염, 병’ 으로 버스에다 그려놓았는데 어쩌면 그렇게 딱 들어맞는지 모르겠다.
– 개판 (page. 78)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안건모 글, 최호철 그림 | 보리 | 2008

인생만화

오랜만에 쓰는 독후감이다.
사실 독후감을 포함해서 블로그에 글을 적는 것이
재미있을 때도 있고, 좀 구차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런 걸 내가 왜 굳이 적고 있을까 하는..)
다른 바쁜 일에 밀려서 생각만 하고 그냥 지나칠 때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가끔 지난 글들을 보면 기분이 좋고, 이렇게라도 적어두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인생만화’를 보면서
좀 더 시간을 내어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일상의 소소한 장면들인데,
그 그림과 감칠맛 나는 글을 보고 있으면
내 삶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아무리 바빠도
가끔은 자전거 타고 양재천을 달리는 여유 정도는 가져야겠다.
인생만화
책을 덮고나니 눈에 들어오는 표지의 한자 제목.
人生漫畵가 아니라 人生萬花였다.

나는 출근길에 여기저기 눈이 머무는 대로 그림을 그린다.
골목에서나 지하철에서.
그림을 그리면 대상과 대화하게 되고 친해지고
사물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어, 결국은 사랑하게 된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대상을 사랑하는 일이다.
무엇이든 천천히 그리면 다 그림이 되어 어떤 때는 내가
마이다스의 손이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사실은 사물 자체가 원래 황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일은 사실 습관이어서
그리지 않고 있으면 언제 황금이었냐 싶게
그냥 사물로 돌아가버린다.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말이다.
아침에 골목을 나서면 이런저런 것들이 그려달라고
발목을 잡는다.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을 때도 있지만……
– 행복한 천형 (p.129)

인생만화
박재동 글, 그림 | 열림원 |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