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정말 재밌는 소설이었다..
고시원 방안에서 나도 모르게 소리내고 웃어서 당황하기도 했다. ^^;
오래도록 여운이 남을 것 같다. (박하사탕을 본 후의 기분 같은 것…..)
내가 프로야구를 보기 시작하고,
같은반 친구들끼리 토요일마다 동사무소 앞마당에서 야구를 했던,
초등학교 4학년 그 때엔,
인천 연고의 야구팀은 삼미 -> 청보 -> 태평양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태평양이 아닌 대전 연고의 빙그레를 응원했고
지역 연고를 주장하는 아버지와 동생은 태평양을 응원했었다..
피홈런 1위 키다리 잠수함 투수 한희민.
송곳 같은 제구력의 이상군.
악바리 이정훈. 타격왕 이강돈. 홈런타자 장종훈.
항상 우승 문턱에서 해태에게 무너져 2위에 그쳐야 했던 빙그레….
그래서 아직도 선동열에겐 씁쓸한 감정이 남아있다.. ^^;
어느순간부터 프로야구..라는 것에 관심을 두기가 힘들어졌고,
언제부턴가 빙그레는 한화로 바뀌어있었다.
그리고 그토록 바라던 우승도 해냈지만…
그다지 기쁘진 않았다..
그 때의 한화는 어렸을 때 그렇게 좋아하던 빙그레와는 다른 느낌이었던 것 같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대학교에 들어가고
어느순간부턴가 삶에 대한 나의 태도가
삼미 슈퍼스타즈의 야구…처럼 되어 버린 것 같다..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
삼미의 야구…
그래… 하지만… 그래도…
벌써부터 그런 야구를 하기엔 내가 아직 너무 젊잖아…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하더라도
연습생 출신에서 홈런타자로 우뚝 선 장종훈처럼
빙그레의 야구를 해야하는 거 아냐?
그리고 나는 ― 별 무늬가 박힌 잠바와 모자, 또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잡동사니들을 어루만지며 참으로 오랜만에 나의 과거를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왜 그동안 한 번도 과거를 기억하지 않은 걸까. 잘 모르겠다. 나는 너무 바빴다. 언제나,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랬다. 생각하면 나에게도 왕년이 있었다. 촌스런 별 무늬처럼, 느닷없고 보잘것없던 청춘의 1, 2년. 순간 인정하기 싫은 것은 ― 그래도 그 순간이 가장 빛나던 시절이었단 잔인한 사실. 대저 그것이 클라이맥스였다니, 우리의 삶은 얼마나 시시한 것인가.
그 적막하고 쓸쓸한 방 안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엄청난 각도로 휘어진 슬라이더 볼이 자신의 출발점을 뒤돌아보는 느낌이었고, 자신을 놓아준 투수의 그 공허한 빈손을 쳐다보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한없이 멀고 아득했다. (p.225)